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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VIBE] 노석준의 메타버스 세상...단테가 만든 가상공간-②

입력 2024-06-22 14: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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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이에 연합뉴스 K컬처 팀은 독자 제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 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단테의 지옥


단테가 창조한 사후 세계는 어떤 공간일까?


지옥은 죄의 종류와 무게에 따라 아홉 단계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단계는 층으로 구분된다. 지옥은 전체적으로 역피라미드의 원뿔형 구조이며, 각 단계는 원형 구조로 되어 있다. 9개의 층에서는 각각의 공간적 프로그램에 충실하고자 음욕, 식탐, 탐욕, 폭력, 사기 등 죄의 종류와 무게에 따라 아주 명확하게 카테고리화 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층은 지옥의 한 부분이긴 하지만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곳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엘리시온 같은 풀밭이 펼쳐져 있다. 2층 음욕 지옥은 크레타섬의 전설적인 왕 미노스가 지키는 곳으로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3층 식탐 지옥은 머리가 세 개 달린 짐승인 케르베로스가 지키는 곳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은 악취가 나는 차가운 비를 맞으며 더러운 흙탕물에 누워 신음한다.


4층은 탐욕 지옥으로 로마신화에서 부와 풍요의 신인 플루토스가 늑대의 모습을 한 채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이곳의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상징하는 짐을 굴리는 형벌을 받으며 서로 밀고 싸우는 것을 반복한다.


5층은 분노 지옥으로, 지옥에 흐르는 스틱스강 주변의 흙탕물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물어뜯으며 강 밑에서 허우적거린다. 6층부터는 지옥의 하부인데, 악의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이 죄악의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뜨거운 무덤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7층 폭력 지옥은 붉은 피의 강물로 들끓고 있는 플레제톤강이 있고 불덩이가 쉼 없이 쏟아진다.


8층 사기 지옥은 말레볼제(malebolge)라는 사악한 구덩이가 있고, 사기죄를 지은 사람들이 열 겹의 구덩이에서 열 가지의 벌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9층 배신 지옥은 지옥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루시퍼가 머물고 있다. 지옥의 강이 마지막으로 고이는 코키투스라는 얼음 호수에서 배신자들은 차가운 얼음 속에 처박혀 고통에 신음한다.


단테가 '신곡'에서 묘사한 지옥은 현재까지도 많은 문학, 예술, 영화 작품 등에서 지옥을 표현할 때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정도로 매우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단테의 공간은 원뿔의 기하학을 사용해 그가 구성한 사후 세계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 그가 묘사한 지옥의 공간들은 지구와 대기라고 하는 대지, 즉 사이트를 전제로 설계돼있다.


이러한 사이트라고 하는 한계적 설정이 단테가 지옥을 더욱 정교하게 설계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해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단테는 사후의 가상 세계를 디자인하면서 '지구'라는 한계성을 가진 사이트를 설정함으로써 가상공간을 건축학적으로 접근했다. 세 가지의 거대한 공간적 프로그램인 지옥, 연옥, 천국 안에 서 각각의 공간에 맞는 세부적 프로그램과 연결 공간 등이 치밀하게 디자인되었다. 그리고 원뿔형 기하학을 통해 형성되는 순환적 시스템에 스파이럴 구조(spiral structure)로 이루어진 링 형태의 스텝(step)을 구성해,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공간과 동선을 만들어냈다.




허드슨 야드(좌), 구겐하임 미술관



여기에는 각각의 스텝으로 이루어진 링의 층에서 자연스럽게 다른 단계의 지옥이 형성돼 각 단계에서 완벽하게 다른 형태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분리했다. 또, 원뿔의 꼭짓점에서 시작해 점점 더 커지는 공간 스케일의 점진적 확장성까지 확보했다. 이는 사후 세계로 오는 후대의 모든 인간을 거의 무한으로 수용할 수 있음을 상징하는 공간적 설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단테는 원뿔의 기하학을 사후 세계의 디자인에 채택함으로써 지속적인 연결성, 순환적 동선의 시스템, 단계별 공간의 확장성, 무한 확장의 가능성 등 사후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완벽하게 해결했다. 게다가 이 원뿔들이 연결되어 공존하는 지옥, 연옥, 천국이라는 세 가지 사후 세계를 매우 훌륭하게 구성했다.


이를 통해 단테가 건축과 공학에도 놀라운 수준의 전문 지식을 갖췄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지옥과 연옥의 구조로 활용한 스파이럴 동선의 공간은 20세기 건축의 대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의 구겐하임 뮤지엄이나, 뉴욕 허드슨 야드에 건축된 토마스 헤더위크의 베슬(vessel)을 연상시킬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되었다.


◇ 단테의 연옥


연옥은 지옥에 갈 정도로 큰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천국에 갈 수준도 아닌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다. 거기서 자신의 죄를 모두 정화하면 마침내 천국에 이를 수 있다. 연옥에서도 단테의 뛰어난 도식화 능력을 엿볼 수 있다. 연옥도 지옥과 마찬가지로 원뿔 형태의 구조로 완벽한 기하학을 사용했다.


그런데 연옥은 지옥과는 달리 하늘로 향하는 높은 산의 형태를 띠고 있다. 지옥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지구 반대편으로 나오면 연옥의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단테의 연옥



연옥은 총 일곱 층의 관으로 둘러싸여 있다. 한 층씩 올라가면서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방탕의 죄를 씻는 공간이다. 이러한 모든 단계적 스토리와 천국과 지옥의 경계에 존재하는 상상적 과정을 단테는 하나의 완벽한 건축적 시스템으로 완성했다.


단테는 각각의 경계를 거치면 하나의 꼭짓점으로 모여 다른 단계로 갈 수 있도록 연옥을 도식화했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의 연결로 지옥에서 연옥으로, 연옥에서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완벽한 기하학 채널을 디자인했다. 이렇듯 단테는 기독교 세계의 모든 종교적 과정을 그만의 완벽한 가상적 세계에 담아냈다.


이는 인류가 시도한 대범한 작업 중 하나이며, 사람들이 지옥, 천국, 연옥을 구체적인 공간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든 또 하나의 메타버스다.


◇ 단테의 천국


'신곡'에서 천국은 좀 더 도식적이고 체계적으로 묘사된다. 작품 속에 그려진 천국은 당시 가톨릭의 공식 우주관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이론에 따라 아홉 개의 하늘로 이루어져 있다. 지구를 중심으로 투명한 아홉 개의 공이 겹겹이 둘러싸고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모습이다.


원뿔형 구조이던 지옥이나 연옥과는 달리 천국은 원형 구조로 돼 있다. 이 원형적 구조는 공정과 민주, 평등을 상징한다. 아서왕의 '원탁의 기사'에서 원탁에서 왕을 포함한 모든 기사가 그들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개진할 수 있었던 것과 유사하다. 즉, 원형의 천국에서는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




단테의 천국



연옥에서 표현된 원뿔형 구조는 기하학적 특성상 원뿔의 꼭짓점에서 다시 시작해 천국인 원형의 공간 안에서 점점 확장해간다. 연옥에서 자신의 죄를 모두 씻은 영혼들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원뿔의 꼭짓점에서 다시 시작해 원으로 이어지게 한 것이다. 원의 크기 또한 점점 커져서 결국 무한대로 커지는 구조다. 이런 구조학적 가능성은 영원불멸함과 영원한 순환적 개념을 담고 있기도 하다. 최상의 종착은 천국이고 최악의 종착은 지옥임을 완벽한 원뿔과 원형의 기하학적 도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단테는 인류 최대의 가상성의 세계인 사후 세계를 천국, 연옥, 지옥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공간의 오가니즘으로 창조해냈다. 또한 이 세 개의 공간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순환될 수 있도록 기하학을 활용했다.


단테의 '신곡'은 인류가 사후 세계의 세 가지 세상을 시각적, 공간적으로 인지하고 이해하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단테는 인류 최초로 사후 세계의 마스터플랜을 완벽하게 구상했고, 이를 통해 천국, 연옥, 지옥을 공간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하는 메타버스를 구현했다.


<정리 : 성도현 기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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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7 11:00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