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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주간으로 게재하며 K컬처팀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본인 제공]
◇ 노동의 종말 이후: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기술이나 경제 구조에만 있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쟁점은 인간 존재론, 곧 '인간은 왜,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는 철학적 질문이다.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인간의 가치는 여러 기준으로 평가돼 왔지만, 경제학·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노동이 인간 가치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축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봉건 사회에서 인간은 태어난 계급에 따라 수행하는 노동이 결정됐다. 종교 지도자·제사장·왕·귀족·군인·농민·노예 등으로 나뉘던 위계 구조는, 근대 산업혁명과 더불어 큰 변화를 맞았다. 시민 사회와 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정치 지도자·시민·자본가·노동자라는 새로운 구조로 재편됐다.
이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내용과 가치 역시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기본 전제, 즉 '인간은 노동을 통해 사회적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는 구조는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종교적 인간관, 근대 시민관, 산업노동자 중심의 계급관 등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인간의 사회적 개념 장치들은 이제 서서히 해체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생산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는 현실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새로운 정의를 요구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핵심 가치는 더 이상 노동을 통한 경제적 생산 능력에만 머물지 않는다.
앞으로 인간의 가치는 의미, 생성, 창조, 관계 설정, 감정, 서사, 목적성 등 비경제적 능력에서 더 크게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본질적으로 인문학적 가치이며, 지금까지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심으로 평가되던 인간의 가치 기준과는 방향이 아주 다르다.
대부분의 생산성을 위한 노동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수행하고, 인간의 역할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방향이 타당한가'를 결정하는 의미 부여와 목적 설정, 그리고 그 결과물을 소비하고 해석하는 영역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즉, 사회에서 인간의 중심적 역할과 가치는 '직접 생산하는 존재'에서 '방향을 정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 이 전환을 이해하기 위해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를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
AI는 기본적으로 실질적 기능을 수행한다. 데이터를 분석하고, 물리·디지털 상품을 생산하며, 서비스를 제공한다. 인간은 그 수행된 결과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음 단계의 목적을 만들어낸다. AI가 생산해낸 물리적·비물리적 산출물에 대해 인간은 '이것이 무엇을 위해 쓰여야 하는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를 해석한다. 그리고 새롭게 설정된 목적에 따라 AI는 다시 기능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인간이 또다시 의미화하는 순환이 계속된다.
이 순환 구조 속에서 인간의 철학적·인문학적 능력은 경제적 실체와 결합한다. 방향성과 목적성을 제공하는 인간의 비판 능력과 통찰력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결국 'AI 이후의 인간 역할'은 기술을 넘어, 가치 판단과 의미 부여, 윤리적 기준 설정의 영역에서 결정될 것이다.
◇ AI 이후의 문명은 혼합 체제로 진화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우리는 큰 우려를 품고 있다. 그러나 AI의 등장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를 곧바로 파괴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본주의의 운영 원리, 부의 분배 구조, 인간 존재의 방식은 상당 부분 바뀔 수 있다.
미래의 경제적 성장은 크게 두 축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인공지능이 탑재된 다양한 형태의 로봇이 만들어내는 기계적 생산력, 다른 하나는 언어·이미지·코드 생성 모델을 기반으로 생산되는 지식 노동의 산물이다. 여기에 과학·공학 분야의 혁신적인 성과, 양자 컴퓨팅의 발전 등이 결합하면, 생산성은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의미 경제'의 주체로서, 인공지능·로봇·AI 비서를 지휘하고 조율하는 일종의 오케스트라 지휘자 역할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종합하면, 미래의 문명은 크게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혼합 체제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첫째, AI 기반 시장 자본주의는 유지될 것이다. 자본주의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경제 체제 중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력이 높은 체제로 평가받아 왔다.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이 시스템의 생산성을 더욱 가속한다. 기업들은 AI와 로봇을 활용해 비용을 줄이고, 상품·서비스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자동화 수익 분배 사회주의적 요소가 등장할 것이다. 모든 인간이 인공지능 시대에 주체적 생산자로 남기는 어렵다. 많은 사람은 노동 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생산 활동보다는 소비와 참여에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부의 편중이 발생하면, 국가와 사회는 이를 조정하기 위해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일궈낸 막대한 부와 생산성의 열매를, 그 생산성에서 소외된 사회 구성원에게 일정 부분 분배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질 것이다. 기본소득, 로봇세, 데이터 배당과 같은 논의가 대표적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일부 젊은 세대는 이미 주거비 폭등, 교육비·의료비 부담, 소득 정체로 인해 기존 자본주의 체제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이들은 고전적 의미의 이념적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기보다, 극심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실용적 사회주의'적 정책(강화된 복지, 누진적 과세, 대기업 규제, 공공서비스 확대)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AI와 자동화로 인한 구조적 불평등이 심화할수록 더욱 힘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의미 중심' 인간주의 문명이 도래할 것이다. 인간이 단순노동 기반 생산활동에서 멀어지면서, 호모 사피엔스의 본질인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역할이 전면에 나올 수 있다.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인간의 학습 능력과 인지 역량도 확장되면서, 인문학·철학·예술·사상에 대한 관심과 생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창조성을 요구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인간은 자기 능력을 그런 방향으로 집중하게 될 것이다.
AI 기반 제작 도구들은 소설·영화·게임·음악·디자인 등 다양한 창작물을 현실 세계와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쏟아내게 할 것이다. 이 창작물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계층이 될 수 있다. 과거의 생산성이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에 있었다면, 앞으로는 의미와 가치 부여, 목적 설정 같은 인문학적 사고가 인간 핵심역량으로 부상할 것이다.
결국 이 세 구조(AI 기반 시장 자본주의, 자동화 수익 분배 사회주의, 의미 중심 인간주의)는 서로 대립하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으로 얽혀 갈 가능성이 크다. 자본주의는 생산성과 효율을, 사회주의적 요소는 분배와 연대를, 인간주의는 방향과 가치를 담당하는 식이다.
따라서 미래 사회의 핵심 과제는 이 세 체계를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하고 관리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정치와 정책, 교육과 문화는 바로, 이 균형을 찾는 작업이 될 것이다. 노동의 의미가 달라지는 시대에, 인간은 더 이상 '무엇을 생산했는가'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앞으로의 인간 가치는 '어떤 의미를 만들고, 어떤 방향을 제시하며, 어떤 관계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가'에서 더 크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 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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