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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 제공]
자율주행자동차에 대한 논의는 오랫동안 센서 성능,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정확도, 연산 능력, 고정밀 지도 구축 같은 기술적 경쟁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레벨3를 넘어 레벨4 무인 자율주행이 상용화를 향해 다가서는 지금, 논의의 중심축은 분명히 이동하고 있다.
'기술이 가능한가'에서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그 책임을 우리 사회는 어떤 구조와 비용으로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가'는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기존 자동차 보험 제도는 매우 명확한 전제 위에서 설계됐다. 교통사고의 주요 원인은 인간 운전자의 부주의·과실(Human Error)이며, 따라서 위험의 1차 주체는 개인 운전자이고 보험은 그 개인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산하는 장치라는 전제다.
실제로 오늘날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절대다수가 운전자 과실에 기인한다는 통계는 이 전제를 뒷받침해왔다. 하지만 자율주행, 특히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주행을 대신하는 레벨3 이상 단계에서는 이 전제가 점점 약해진다.
가속·감속·차선 유지·충돌 회피 등의 핵심 판단과 제어가 인간이 아닌 시스템으로 이동하면서, 사고의 원인 역시 '운전자 과실'에서 '시스템 결함'과 '운행자(운영자) 책임'이 뒤엉기는 과도기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은 공통으로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다. 다만 제조사에 어떤 방식으로, 어느 범위까지 책임을 물을 것인지, 다시 말해 보험사가 피해자를 먼저 구제한 뒤 누구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해법을 선택하고 있다.
영국은 2018년 제정된 '자동 및 전기차법'(Automated and Electric Vehicles Act)을 통해, 일정 조건을 만족한 자율주행 모드에서 발생한 사고의 경우 자동차 보험사가 먼저 전적인 책임을 지고 피해자에게 배상한 뒤, 시스템 결함이 확인되면 제조사나 소프트웨어 공급사에 구상하는 구조를 채택했다.
한마디로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지 다툴 시간 없이, 우선 한 곳이 책임'으로 하는 모델이다.
독일은 제조사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손해배상 한도를 설정해, 기업들이 완전히 무한 책임의 공포 속에서 기술 개발을 포기하지 않도록 안전판을 두는 방식을 선택했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통일된 법제 대신 주별 입법과 소송·판례를 통해 책임 영역이 점진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이른바 '사후 규범 형성' 방식에 가깝다.
일본과 한국은 기존의 운행자(운전자·소유자) 책임 체계를 큰 틀에서 유지하되, 단계적으로 자율주행 요소를 반영해 가는 신중한 전환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은 국가 주도의 강력한 규제 체계를 토대로, 운전자가 탑승한 자율주행과 완전 무인 자율주행을 법적으로 명확히 구분해 책임 주체를 달리 설정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기본 원칙은 '선(先) 배상, 후(後) 구상'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우선 자동차 보험사가 피해자의 손해를 신속하게 보상하고, 이후 사고 조사와 기술 분석을 통해 시스템 결함이 드러나면 제조사, 부품사, 소프트웨어 공급사 등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는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 안정적이고, 제조사 책임도 시장 메커니즘 안에서 자연스럽게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제도는 어디까지나 '운전자의 존재'를 전제로 설계된 틀이다. 레벨3 단계까지는 시스템이 주행을 담당하더라도, 결국 비상시 개입 책임을 지는 운전자가 탑승한다는 점에서 기존 체계의 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구간에서 운전석이 완전히 비는 레벨4 무인 자율주행이 본격화되면 제도의 빈칸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운전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고에서 1차 책임 주체를 누구로 볼 것인지, 보험은 '누구의 위험'을 대신 떠안는 장치인지가 다시 질문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공백을 메우는 핵심 키워드는 데이터다. 기존 교통사고에서는 목격자의 진술, 블랙박스 영상, 현장 감식 등이 원인 규명의 주요 수단이었다. 그러나 자율주행 사고에서 최종적인 책임을 가르는 것은 사람이 본 장면이 아니라 시스템이 기록한 로그(log)다.
사고 직전까지 어느 시점까지 사람이 제어했고, 언제 자율주행 시스템이 개입했는지, 센서가 무엇을 인식했고 어떤 대상은 놓쳤는지, 회피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었는지, 알고리즘이 어떤 경로를 계산했는지 등은 오직 차량과 서버에 남은 데이터가 설명해준다.
자율주행 데이터는 기술 개발 과정의 부산물이 아니라, 책임을 증명하고 배상을 조정하는 데 사용되는 유일하고도 결정적인 언어가 되는 셈이다. 데이터가 충분히 기록·보존·제출되지 않는다면, 보험은 실제로 작동하기 어렵고 책임은 추상적인 비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과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제조사 입장에서 자율주행 데이터는 하드웨어 성능, 인공지능 모델, 학습 전략이 집약된 핵심 영업비밀이자 경쟁력의 원천이다. 반면 보험사와 가입자 입장에서는 사고 원인과 책임 범위를 판단하는 데 필요한 필수 정보이기도 하다.
정부·규제기관의 관점에서 보면 자율주행 데이터는 교통안전 정책과 인프라 설계를 위한 공적 자산의 성격도 띤다. 이렇게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사고 조사와 분쟁 해결을 위해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어떤 형식의 데이터를 제공하도록 법으로 강제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없다면, 레벨4 시대의 자동차 보험 제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껍데기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제조사의 책임 역시 단순하지 않다. 내연기관 시대의 제조물 책임은 대체로 브레이크, 에어백, 조향장치 등 '눈에 보이는 부품 결함'을 중심으로 논의돼 왔다. 하지만 자율주행 시대의 제조사 책임은 센서와 제어장치뿐 아니라, 알고리즘의 판단 구조, 학습 데이터의 편향,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관리, 통신 장애 대응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 전반을 포괄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고를 통째로 제조사 책임으로 돌리는 순간, 자율주행 비즈니스는 보험료 산정 이전에 사업 자체의 존립 가능성부터 위협받는다. 그래서 다수의 국가는 제조사를 전면에 세워 '무한 책임 주체'로 만들기보다는, 보험을 중간 완충지대로 두고 그 뒤에서 제조사에 일정 부분 비용을 분담시키는 구조를 선호하고 있다. 책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부담을 보험이라는 위험 분산 장치를 통해 사회적으로 완충하는 방식이다.
이 지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결국 공공보험과 국가 책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레벨4 무인 자율주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주요 위험은 개인 운전자의 주의력이나 숙련도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이미 넘어선다. 대규모 소프트웨어 오류, 통신망 장애, 지도 데이터의 시스템적 오류, 자율주행 차량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처럼, 한 번 발생하면 여러 지역과 다수의 차량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스템 리스크'가 핵심 위험이 된다.
이런 종류의 위험은 개별 운전자나 단일 민간 보험사가 단독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적 성격을 지닌다. 결국 국가가 일정 부분 리스크 관리에 개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항공 사고, 원전 사고, 감염병 대응 등에서도 국가와 공공부문이 위험 관리에 개입하는 이유는 동일하다. 위험이 특정 개인이나 기업의 범위를 넘어 사회 전체로 파급될 수 있는 영역에서는 공적 개입이 불가피하고, 어느 정도는 당연한 책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율주행 역시 교통이라는 필수 인프라에 깊숙이 들어온 기술이라는 점에서, 일정 수준 이상 보급이 이뤄지는 순간부터는 공공 리스크 관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공공보험이 민간 보험을 전면 대체하는 형태가 아니라, '민간 보험과 제조사의 책임, 국가·공공재 보험'이 결합한 다층적 하이브리드 구조가 보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평시의 개별 사고는 민간 보험사가 중심이 돼 처리하되, 대규모 시스템 결함이나 예측 불가능한 집단 사고에 대해서는 제조사와 공공부문이 일정 부분 비용을 나누어 부담하는 구조다.
결국 자율주행의 성공 여부는 센서의 해상도나 인공지능의 인식률, 차량의 디자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고가 난 다음,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어느 주체에게 어느 수준의 책임과 비용을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얼마나 촘촘하게 준비해 두었는지가 관건이다. 보험은 기술의 부속품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실제 도로 위를 달릴 수 있게 하는 마지막 관문이자 사회적 허가 장치에 가깝다. 운전석은 비울 수 있어도, 사고와 책임을 둘러싼 공백은 비워둘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의 미래는 단지 테스트 트랙이나 도심 도로 위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사고 이후를 감당할 수 있는 제도, 특히 책임과 데이터를 둘러싼 규범과 보험 구조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하느냐가 다가올 레벨4 시대 대한민국의 진짜 경쟁력이 될 것이다. 기술이 먼저 도착하더라도, 책임을 담을 그릇을 준비하지 못한 사회는 결국 그 기술의 열매를 온전히 누리기 어렵다.
운전석이 비워지는 시대일수록, 법과 보험, 공공책임의 자리는 더 탄탄히 채워져야 한다.
정광복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KADIF) 단장
▲ 도시공학박사(연세대) ▲ 교통공학 전문가·스마트시티사업단 사무국장 역임 ▲ 연세대 강사·인천대 겸임교수 역임 ▲ 서울시 자율주행차시범운행지구 운영위원 ▲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자율주행 자문위원 ▲ 강릉 ITS 세계총회 조직위 위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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